500만 원이 모이면
“혼자 헤매던 첫날이 사라집니다”
가족을 잃은 그날, 유가족은 울 시간도 없이 서류부터 찾아야 했습니다. 어디에 전화해야 하는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500만 원이 모이면, 사망 직후 가장 혼란스러운 그 첫날부터 전문 상담과 동행이 시작됩니다. 유가족이 홀로 관공서 문을 두드리는 일이, 더는 없도록.
교문 앞에 쌓이던 하얀 국화 · 하굣길에 매달린 검은 리본
35도의 폭염 속, 끝이 보이지 않던 검은 옷의 행렬
이 기억을 다시 꺼내는 건, 그날의 아픔을 되살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여름,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왔던 이유 — 한 사람의 죽음을 ‘남의 일’로 두지 않겠다는 마음. 우리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미 한 번,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 행렬은 해산했지만,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
인사혁신처 국회 제출자료(2020년~2024년 6월) · 2024년 국정감사. 같은 기간 전체 610건 중 336건 승인.
교사유가족협의회 · 대표의 기록
그 여름, 수십만 명이 걸었던 그 행렬 — 저는 그 행렬이 향하던 자리에 서 있던 사람입니다.

동생을 보내기 전까지, 저는 그냥 평범한 IT 회사 직원이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 코드를 짜고, 회의를 하고, 금요일 저녁을 기다리는 — 여러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뉴스 속 비극은 언제나 남의 일이었고, 내일이 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하루 1~2시간 자며 서이초 선생님의 계정, 자료, 증언 — 무수히 많은 자료들을 확보하고 정리했습니다.

고되고 힘든 시기였지만, 서이초 선생님과의 소소한 약속들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 스스로 한이 되어 몇 개월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러는 과정 속에 선생님들은 연달아 돌아가시고, 그 유족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연락이 오게 됩니다.
한 명씩, 한 명씩 —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조사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순직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언론에는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 또한 이미 피로와 정신적인 고통이 극에 달하고 있어, 이들을 도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한 살배기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딸을 잃은 아빠의 슬픔을 저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때 결심했습니다. 이들이 나를 찾아올 것이 아니라 — 나라의 시스템이 사망자와 순직자, 그 유족들을 지키게 만들어야겠다.

회사를 떠난 뒤의 시간들 — 유족들과 함께한 집회
저는 그 길로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힘들어하는 유가족들과 함께 교사유가족협의회를 만들었습니다.
너무나 참담했습니다. 아이들의 돌발행동 — 그 돌발행동에 대한 정당한 훈계와 가르침들이 정서적 아동학대로 둔갑하여 민원·고소·고발을 당했고, 책임감과 사명감을 다하여 그럼에도 끝까지 아이들을 계도하고 가르치려 했던 선생님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지난한 과정 속에서 계속된 민원과 반복된 행정적·소송적 압박감은, 결국 끝내 책임감과 사명감을 내려놓는 대신 목숨을 내려놓게 되는 수많은 선생님을 만들었습니다.

교사유가족협의회 13여 가족 — 그중 10건 가까이가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특정한 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이후 수많은 사건을 조사하고, 참여하고, 때론 진상조사단에 소속되어 사건을 조사하고 순직심의 지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소름 끼치게 똑같은 패턴, 같은 이유였습니다.
사건명·시기는 언론 보도 기준 — 발행 전 협의회 원장과 최종 대조.
한 사건을 미친 듯이 조사하고, 때론 사건 현장에, 때론 변호사와, 때론 노무사와 함께 움직이며 한 사건을 해결했습니다. 매 사건이 서이초 선생님과 같은 패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분노했고, 그 유족들, 남아 있는 자녀들을 보며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해결될 때쯤 또 발생하는 사망 사건 — 반복되는 사건들로, 출구가 안 보이는 어둠을 헤매는 느낌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사망하고, 그 사망의 진상을 조사하고, 순직 준비까지 — 이것이 어찌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 슬퍼하는 유족의 몫이어야 합니까.
무너진 생계, 천문학적인 변호사·노무사 비용, 가족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기 위한 포렌식 비용까지.
언제까지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란 말입니까.
그런 지옥 같은 삶을 같이 버티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교사유가족협의회 회원이자 故 신목초 김현진 선생님의 작은아버지인 김형영 회원님이십니다.

故 김형영 회원님
난생처음 법전을 펼치셨습니다. 행정심판이 뭔지, 정보공개청구가 뭔지 — 조카가 살아 있을 땐 몰라도 됐던 말들을 하나하나 배우셨습니다.
밤마다 조카의 기록을 읽고, 조카가 견뎌야 했던 시간을 뒤늦게, 혼자, 목격하면서요. 그렇게 2년.
진실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분의 몸이 먼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병은 깊어지는데, 그분은 병상에서도 서류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이러다 큰일 나십니다" 했을 때 그분이 하신 말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내가 우리 현진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이제 이것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긴 싸움 끝에, 조카의 억울함은 마침내 밝혀졌습니다 — 2년 1개월 만의 순직 인정. 하지만 그 소식을 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김형영 회원님은 병세가 악화되어 조카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2026년 6월 26일 영면).
2년을 싸워 얻어낸 진실을, 그분은 오래 누리지 못하셨습니다. 한 선생님의 죽음을 증명하기 위해, 한 가족은 두 번의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김형영 회원님, 지금쯤 조카 만나셨지요? 하늘에서 내려다보실 때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남겨진 가족들 곁을 지키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선생님, 순직자가 되면 나라에서 엄청난 보상을 해준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맞습니다 — 순직 보상금 1억 원 내외, 순직연금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달에 얼마 안 되는 연금이 결코 그들의 경제난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순직자가 되어도 빚쟁이가 된다 — 그것이 지금 교육계 순직자의 이면입니다.
| 제도 내 진상조사 | 제도 내 순직심의 | 긴급 생계·치료 지원 | 사회 복귀 지원 | |
|---|---|---|---|---|
| 소방 | 있음 | 있음 | 산하 단체 지급 | 일자리·직업교육 |
| 경찰 | 있음 | 있음 | 산하 단체 지급 | 청소권·매점운영권 등 |
| 교육 | 없음 | 없음 | 없음 | 없음 |
교육계에서는 사망자, 심지어 순직자여도 그 유족들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순직을 인정받아도 빚만 늘고, 아이들의 치료비와 생활비도 넉넉지 않으며, 아내·남편·아들·딸 들도 사회적 복귀가 되지 않아 몇 년 동안 집 밖을 못 나오거나 엄청난 빈곤과 고통에 시달립니다.
특혜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사망자와 순직자의 남은 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게,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외치는 것입니다.
국방을 지키는 군인, 치안을 지키는 경찰, 안전을 담당하는 소방 — 누구보다 소중하고 명예로운 사람들입니다. 저는 교육도 그들과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계에 몸담아 마지막까지도 사명감과 책임감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했으나 그 과정에서 병을 얻어 순직하신 교육계의 순직자들을, 이리 대해선 안 될 것입니다.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하고, 그 유족들조차 또 다른 2차 피해로, 2차 사망으로 방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사단법인을 만들었습니다.
등불을 받치는 다섯 개의 받침 — 사단법인의 다섯 가지 일
달라진 건 없습니다. 3년 전 교사유가족협의회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그 참혹한 각오와 용기로, 다시 한번 나아가려 합니다.
함께해 주세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선생님께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비단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나의 동료가, 나의 친구가, 나의 가족이, 혹은 내가 겪을 수도 있는 끔찍한 일입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이제는 멈춰주세요. 여러분의 관심과 도움만이 이 굴레를 끊고 — 순직자에 대한 예우, 아이들에 대한 치료, 유족들에 대한 사회적 복귀를 만들 수 있습니다.
3년이 지나고 알게 됐습니다. 묻고 있는 건 제가 아니라, 동생이라는 걸.
“오빠, 우리 반 아이들은 괜찮을까?”
“내가 없어도, 교실은 괜찮을까?”
동생의 뒤에는 더 많은 선생님들이 서 계십니다. 이름이 알려진 분도, 끝내 알려지지 못한 분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교실을 걱정했던 분들이.
저는 아직 이 질문에 “괜찮아”라고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여름 이후에도 선생님들은 계속 떠났고, 남겨진 유가족들은 지금도 각자의 방에서 혼자 법전을 넘기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병상에서도 서류를 놓지 못하는 어느 아버지가 혼자 밤을 견디지 않아도 되고,
전국 곳곳의 유가족들이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하루가 생기고,
“왜 선생님들이 죽어야 했는가”라는 그 여름의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힘이 됩니다.
그 여름, 검은 옷의 행렬 속에 당신이 있었다면 — 이제 이 대답 속에도 있어주세요.
“선생님, 이제 여기는 걱정 마세요.
이곳은 저희가 지킬게요.”
이 한마디를, 그분들 모두에게 — 함께 완성해 주세요.
후원이 하는 일
이 숫자는 돈이 아니라, 한 가족이 되찾을 시간입니다.
지난 3년, 한 가족이 내어준 순직보상금이 다음 가족의 사건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돈은, 남겨진 가족의 내일을 지켜야 할 돈이었습니다.
이제 그 등불을, 우리가 함께 들 차례입니다.
여러분의 후원이 쌓일 때마다, 한 가족의 시간이 이렇게 돌아옵니다.
500만 원이 모이면
가족을 잃은 그날, 유가족은 울 시간도 없이 서류부터 찾아야 했습니다. 어디에 전화해야 하는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500만 원이 모이면, 사망 직후 가장 혼란스러운 그 첫날부터 전문 상담과 동행이 시작됩니다. 유가족이 홀로 관공서 문을 두드리는 일이, 더는 없도록.
1,000만 원이 모이면
“당신의 가족이 왜 죽었는지, 유가족이 직접 증명하세요.” 이 잔인한 구조 앞에서, 유가족은 눈물을 삼키고 자료를 뒤졌습니다.
1,000만 원이 모이면, 사망경위 확인부터 순직심의 준비, 법률·노무·의학 전문가의 소견까지 입증의 무게를 우리가 대신 짊어집니다. 유가족에게는 단 하나의 일만 남겨드리겠습니다. 충분히 슬퍼하는 일.
1,500만 원이 모이면
한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가족의 생계를 함께 무너뜨립니다. 냉장고가 비어가는데도, 도움을 청할 곳을 몰라 버티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1,500만 원이 모이면, 장례·생계·주거·돌봄의 긴급한 구멍을 즉시 메울 수 있습니다. 더 큰 위기에 이르러야만 도움받을 수 있는 세상을,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2,000만 원이 모이면
유가족은 말합니다. “슬픔은 사치였어요. 버텨야 했으니까요.” 아이 앞에서 울지 못한 엄마가, 밤마다 혼자 무너졌습니다.
2,000만 원이 모이면, 심리상담과 정신건강 치료, 가족회복 프로그램으로 남겨진 가족의 마음까지 지킬 수 있습니다. 버티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 시간을 선물하겠습니다.
2,500만 원이 모이면
순직 인정으로 고인의 명예는 돌아옵니다. 그러나 남겨진 아이의 학원비는, 명예로 낼 수 없습니다.
2,500만 원이 모이면, 유가족 자녀의 교육과 돌봄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잃은 슬픔이, 아이의 미래까지 삼키지 않도록.
3,000만 원이 모이면
순직으로 인정받아도, 남겨진 가족의 삶은 저절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명예를 되찾은 자리에서 생계와 진로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3,000만 원이 모이면, 배우자의 직업훈련과 사회복귀까지 함께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순직 인정’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 한 가족이 다시 자신의 삶을 시작할 때까지.
3,000만 원이 완성되는 날,
한 가족의 애도할 시간, 버틸 시간, 다시 살아갈 시간이 온전히 채워집니다.
그리고 이 등불은, 다음 가족에게도 꺼지지 않고 이어집니다.
지난 3년, 결혼자금과 적금까지 — 제가 모았던 돈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위험에 처하신 선생님들과 사망하신 선생님들, 그 유족들을 위해 다 쓰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순직자들의 그 피 같은 순직 보상금이었습니다. 빚을 갚기에도 부족한 순직 보상금을 — "우리처럼 힘든 다른 이들의 사건에 써 달라" 말씀하시며, 서이초를 시작으로 모든 순직자의 가족들이 순직자의 목숨의 값을 기부하셨습니다.

한 가족의 보상금이, 다음 가족의 사건을 밝혔습니다 — 불이 불을 켜 온 3년.
이들의 용기와 희생에 이제는 함께해 주세요. 사망자와 순직자 옆을, 함께 지켜주세요.
지금까지 모인 등불
0원
후원만큼 큰 힘이 됩니다 — 한 사람에게 닿을 때마다, 등불이 하나 늘어납니다.
수많은 교육계의 사망자와 순직자분들께, 대표가 한 말씀 올립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밝히신 그 숭고한 등불,
제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 모두가 지키겠습니다."
— 교사유가족협의회 대표 박두용, 그리고 함께하는 가족들 올림
그리고 이 하늘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떠 있던 등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우리가 아직 이름을 부르지 못한 등불들이 함께 있습니다.
인혜야, 나 잘하고 있지?
나 약속 잘 지키고 있지?
보고싶다.
지금 함께하기 어려우셔도, 활동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당신의 등불 번
숭고한 등불 곁에, 당신의 등불이 더해졌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작성 중인 내용이 사라져요.
정말 나가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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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금자명은 가입하신 이름과 같게 해 주세요
입금 확인 뒤 등불이 켜집니다 — 확인되면 문자로 알려 드립니다
숭고한 등불 곁에, 당신의 등불이 더해졌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후원 내역·해지·증서는 교사유가족협의회 홈페이지 마이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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