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자와 사망자, 그 유족들을 위한 캠페인 천원의 기적교사유가족협의회 대표 박두용
01

"인혜야,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

오늘로 1,166일째, 답을 듣지 못한 질문입니다.

답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을, 저는 오늘도 던집니다.
멈추는 순간, 동생의 죽음도 멈춰버릴 것 같아서요.

022023년 여름

2023년 여름을 기억하십니까?

교문 앞에 쌓이던 하얀 국화.
아이들의 하굣길에 매달린 검은 리본.

그리고—

35도의 폭염 속,
아스팔트 위를 가득 메운,
끝이 보이지 않던 검은 옷의 행렬.

그 행렬 속에 당신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행렬에 없었더라도, 뉴스 앞에서 함께 먹먹해하던 당신이 있었을 겁니다.

"왜 선생님이 죽어야 했는가."

이 기억을 다시 꺼내는 건, 그날의 아픔을 되살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여름,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왔던 이유 —
한 사람의 죽음을 '남의 일'로 두지 않겠다는 마음.
우리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미 한 번,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 행렬은 해산했지만, 그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3년 여름, 검은 옷의 행렬
사진: 뉴시스 — 발행 전 사용 허가 필요

그 마음, 아직 거기에 있습니까?

03

"세상을 떠난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사촌오빠, 박두용입니다."

그 여름, 수십만 명이 걸었던 그 행렬.
저는, 그 행렬이 향하던 자리에 서 있던 사람입니다.

동생을 보내기 전까지, 저는 그냥 평범한 IT 회사 직원이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 코드를 짜고, 회의를 하고, 금요일 저녁을 기다리는 — 여러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뉴스 속 비극은 언제나 남의 일이었고, 내일이 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박두용 대표
박두용교사유가족협의회 대표 · 前 IT 기획자 사진: 에듀프레스 — 발행 전 사용 허가 필요
04

그 당연한 세상이, 전화 한 통에 무너졌습니다.

여러분에게 '서이초 교사'였던 그 이름은, 저에게는 그냥 인혜였습니다.

퇴근길에 만나 저녁 한끼하며 반 아이들 자랑을 늘어놓던,
"오빠, 우리 반 애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알아?"
그 말을 스물다섯 해 동안 곁에서 들어온, 제 하나뿐인 사촌동생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보내고 저는 알게 됐습니다.

가족을 잃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장례가 끝나자, 증명이 시작됐습니다.
동생이 왜 죽었는지를, 남은 가족이 서류로 입증해야 했습니다.
세상은 슬퍼할 자격조차 심사했습니다.

저는 울어야 할 시간에 녹취를 풀었고,
무너져야 할 자리에서 탄원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하나를 알게 됐습니다.
이런 가족이, 우리만이 아니라는 것을.

05

조카를 잃은 그날 이후, 그분의 삶은 멈춰 있습니다.

협의회에서 만난 김형영 회원님은 故 신목초 김현진 선생님의 작은아버지입니다.

난생처음 법전을 펼쳤습니다. 행정심판이 뭔지, 정보공개청구가 뭔지, 조카가 살아 있을 땐 몰라도 됐던 말들을 하나하나 배우셨습니다.

밤마다 조카의 기록을 읽고, 조카가 견뎌야 했던 시간을 뒤늦게, 혼자, 목격하면서요.

그렇게 2년.

진실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분의 몸이 먼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병은 깊어지는데, 그분은 병상에서도 서류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이러다 큰일 나십니다" 했을 때 그분이 하신 말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내가 우리 현진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이제 이것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긴 싸움 끝에, 조카의 억울함은 마침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 소식을 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김형영 회원님은 병세가 악화되어 조카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2년을 싸워 얻어낸 진실을, 그분은 오래 누리지 못하셨습니다.
한 선생님의 죽음을 증명하기 위해,
한 가족은 두 번의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유가족이 서류가 아니라 슬픔을 붙들 수 있도록,
이 싸움을 혼자 하지 않도록 —

故 김형영 선생님
유족 제공

김형영 회원님, 지금쯤 조카 만나셨지요? 하늘에서 내려다보실 때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고, 남겨진 가족들 곁을 지키겠습니다.

교사유가족협의회 대표 박두용

이제, 우리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06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은 아름답습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 없던 길을 만들어온, 눈부신 나라. 우리는 분명, 그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환한 불빛의 바로 아래,
빛이 닿지 않는 또 하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국가가 밝혀야 할 죽음을, 칠순을 바라보는 작은아버지가 법전을 넘겨가며 스스로 밝해야 하는 나라.

애도해야 할 시간에 증명을 요구받고, 그 증명에 2년을 쏟다가 제 몸이 무너지는 줄도 몰랐던 사람이 있는 나라.

국가가 진상을 밝히는 것. 유가족이 마음 놓고 우는 것. 당연해야 할 이 모든 것이 —

"이 사각지대에서는,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옆에 앉아 있는 것 말고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키보드 앞에 앉아 있던 손으로 탄원서를 쓰고, 유가족의 손을 잡기로 했습니다.

환하게 빛나는 밤의 도시 스카이라인. 수많은 창이 불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

불 꺼진 방 안에서 바라본 창밖. 멀리 도시의 불빛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또 하나의 대한민국

혼자 싸우다 무너지는 유가족이, 더는 없게 하겠다고.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는 나라를, 여기서부터 만들겠다고.

07

이것은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이초 이후에도, 선생님들은 계속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은 똑같은 여섯 개의 벽 앞에 섭니다.

01

절차적 고통

애도할 시간도 없이 시작되는 행정 절차.

02

증명의 불합리

"증거를 가져오라"는 순직 인정의 벽.

03

가혹한 재정 부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소송 비용.

04

고립된 싸움

어디에도 물어볼 곳 없는 막막함.

05

차가운 외면

주변의 시선과 침묵.

06

고독한 망각

그리고, 잊혀진다는 두려움.

한 가족이 무너지는 방식이 이렇게 똑같다면, 그것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이 사각지대는, 혼자서는 바꿀 수 없습니다."

08

캠페인을 통해 약속합니다

하나. 유가족이 혼자 증명하지 않아도 되도록
교사가 세상을 떠난 뒤, 가족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서류였습니다. 이제 그 길을 가족 혼자 걷지 않도록, 사망 직후부터 유가족과 동행하며 순직 인정에 필요한 법률·행정 전문가를 연결합니다.

둘. 떠난 선생님이 잊히지 않도록
순직 인정이 끝이 아닙니다. 한 분 한 분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기일마다 함께 기억하는 자리를 만듭니다. 그 선생님이 계셨다는 사실이 지워지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셋. 남겨진 가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조카의 순직을 밝히려 뛰어다니던 작은아버지는, 그 긴 싸움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슬픔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기에, 유가족의 심리상담과 회복,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음을 기한 없이 함께합니다.

넷.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한 가족이 겪은 일이 다음 가족에게 반복된다면, 그것은 사회의 공백입니다. 교사 사망 이후의 대응이 유가족의 몫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 되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해 나갑니다.

09

저는 이제 동생에게 묻지 않습니다.

3년이 지나고 알게 됐습니다.
묻고 있는 건 제가 아니라, 동생이라는 걸.

하늘에서 묻습니다.
"오빠, 우리 반 아이들은 괜찮을까?"
"내가 없어도, 교실은 괜찮을까?"

동생의 뒤에는 더 많은 선생님들이 서 계십니다.
이름이 알려진 분도, 끝내 알려지지 못한 분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교실을 걱정했던 분들이.

저는 아직 이 질문에 "괜찮아"라고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여름 이후에도 선생님들은 계속 떠났고,
남겨진 유가족들은 지금도 각자의 방에서 혼자 법전을 넘기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이 대답, 한 가족의 힘으로는 못 합니다.

당신이 함께해 주신다면 —
병상에서도 서류를 놓지 못하는 어느 아버지가 혼자 밤을 견디지 않아도 되고,
전국 곳곳의 유가족들이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하루가 생기고,
"왜 선생님들이 죽어야 했는가"라는 그 여름의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힘이 됩니다.

그 여름, 검은 옷의 행렬 속에 당신이 있었다면 —
이제 이 대답 속에도 있어주세요.
"선생님, 이제 여기는 걱정 마세요. 이곳은 저희가 지킬게요."
이 한마디를, 그분들 모두에게, 함께 완성해 주세요.

선생님은 아침마다 교실 창가의 토마토 '토토'에게 물을 주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토토의 키가 자라는 걸 보며 계절을 배웠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서류에 적히는 이름이 아니라, 아침마다 물을 주던 선생님의 모습으로요.

그 여름, 검은 옷의 행렬 속에서 여러분이 품었던 마음. 그 마음이 아직 거기 있다면, 함께해 주세요.

이제 우리는 새 토토를 심으려 합니다.
선생님이 미처 보지 못한 열매를,
이번엔 우리가 함께 물을 주면서 새로운 열매를 보겠다 약속하면서요.

당신이 지켜낸 오늘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수많은 교육계의 사망자와 순직자분들께, 대표가 한 말씀 올립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밝히신 그 숭고한 등불,
제가 아니, 이제는 우리가 — 모두가 지키겠습니다."

지금까지 1개의 등불이 이 캠페인의 하늘에 떠올랐습니다.
당신이 함께하시면, 마지막 화면의 밤하늘에 등불이 하나 더 떠오릅니다.

— 교사유가족협의회 대표 박두용, 그리고 함께하는 가족들 올림

인혜

한동안은 매일 물었습니다.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이 길이 맞는지.
이제는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먹을 수 있었던 건, 저희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세상을 떠난 선생님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는 수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 기억들이 저희를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저희가 겪은 증명의 시간을,
다음 유가족은 겪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기억해 주신 그 마음으로, 이 길에 함께해 주세요.

"인혜야, 더 이상 묻지 않을게.
이제 내가 대답이 되어볼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지금 함께하기 어려우셔도 괜찮습니다 — 한 사람에게 닿을 때마다,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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